1. 쇳덩이 Lump of Metal
Dream Level. 30
location . Eulji-ro 01, iron, Sewoon Shopping Center
을지로 세운상가 근방에서 발견한 쇳덩이 폐기물. 녹슬었지만 자연스럽게 길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과거 제철 공장에서 쉬지 않고 일해왔던 기계는 현재 더 나은 기계들로 대체되며 버려졌고 자신의 새로운 이름을 찾는다.
Metal waste from the Sewoon Shopping Center. Rusted but holding its fort on the street. The restless ironwork machine of the past was replaced by better machinery. It is searching for its new name.
반복되는 하루, 똑같은 작업. '기계적이다'라는 말이 있다는 걸 처음 들었을 땐 놀랐다. 예를 들어보자, 본인 이름이 철수라면 '철수스럽다'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겠는가. 차갑고, 일만하는 하루를 가진 것들에게 나의 이름이 붙여진다는 게 슬펐다. 정확히는 우리 가족의 이름이지만, 매일 똑같은 일을 한다는 걸 벗어나고 싶던 기계는 나뿐이었지만.
Repeating days, same works. To call something ‘mechanical’ startles me. For instance, wouldn’t it be weird to call a person named ‘John’ ‘Johnical?’ To use my name to describe a cold, mundane daily life was sad. To be precise, to use the name of my family. But I was the only mechanical being that wanted to escape the life of repeating the same endeavor.
전해 듣기론 언니는 아직 종이를 뽑는다고 들었다. 자매가 공장에서 나와 흩어지지 않고 근방에서 일했다는 건 이 바닥에서 드문 일이다. 언니는 그래도 자신의 일을 무척 사랑했다. 나도 그런 언니를 존경했지만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그 집념을 좋아했지, 종이를 사랑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금새 고장나 버렸다. 하기 싫은 일을 기계적으로 하던 하루가 그렇게 끝이 났다. 빠르게 돌아가는 인쇄소에서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 나는 그저 쇳덩이가 되었다. 그날은 내가 다시 태어난 날이다. 나의 새로운 이름 쇳덩이.
I heard my sister still prints papers. It is a peculiar thing for sisters to work nearby and not be separated since coming out from the factory they’re created from. My sister loved her endeavor anyhow. Although I had deep respect for my sister and her perseverance, I did not want to love the paper she makes. Maybe that’s why I broke down. My mechanical days were over just like that. I became a motionless lump of metal in a restless printing-house. That was the day of my rebirth. Lump of metal is my new name.
종이를 만드는 일은 간단했지만, 무언가 새롭게 쓰여질 녀석들에게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 멋진 시인의 시가 쓰여질 종이, 등단을 꿈꾸는 작가의 원고지, 어린 아이의 일기장 또는 소소한 낙서여도 다른 존재가 되고 싶었다. 지워지고 다시 쓰이는 활자들을 생각하면 속이 들끓었다. 노트 표지에 적힐 누군가의 이름, 나도 그것이 갖고 싶었다.
To make a paper was easy, but I felt envious of the ones that would be newly written! Paper that will be written by a great poet, by a writer, or even just a diary of a child, anything else that would be something other. My gut boils when I think of the letters that will be erased and rewritten. The name of someone on the cover. That was what I yearned for.
“쇳덩이.”
“Lump of Metal”
가만히 을지로 골목에 멈춰 언니를 기다리는 내 이름은 쇳덩이다.
That is my name. Motionless, waiting for my sister at the alley of Euljiro.
2. 비닐과 박스 Vinyl and Box
Dream Level. 93
location . Eulji-ro 01, iron, The Cheonggye stream
을지로 청계천 근방에서 발견한 비닐과 박스 쓰레기. 구름이 되고 싶었던 구름은 쓰일 때로 쓰이고 비가 오는 날 길 한 모퉁이에 버려졌다. 어두컴컴한 창고에서 탈출하기만을 기다렸던 비닐, 과연 그 꿈을 이루게 되었을까?
Vinyl and box garbage around the Cheonggye stream, Euljiro. Cloud which wanted to be a cloud was used and wasted on a rainy day. Vinyl that waited for the day to escape the dark warehouse. Would its dream come true?
"난 커다란 구름이 되고 싶었어."
분명 커다란 구름이 되는 꿈을 꾸었다. 눈 떠보니 딱딱한 쇳덩어리를 감싸고 있었다. 양옆으로 같은 비닐들이 있어 물으니, 우린 어차피 하루살이라고. 어딘가 공간에 도착해서 우린 뜯겨지고 중요한 건 안에 쇳덩어리라고. 모든 비닐들은 채념했다. 공장에서 나오고 어두컴컴한 창고에 갇히기 전까지만 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떠도 똑같은 어둠. 하루에 한 번 창고 문이 열리고 하나씩 팔려나가는 쇳덩어리 덕분에 가끔 하늘을 봤다. 구름이 되고 싶다는 꿈을 잊고 싶어서 문이 열릴 때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두어 번쯤 더 감으니 이젠 비닐의 차례였다. 실상 안에 들어있는 쇳덩어리의 탈출이었기에 눈을 뜨지 않고 누군가의 공간까지 침묵했다. 이내 쇳덩어리가 탈출했다. 돌돌 말아진 비닐은 순리대로 버려졌다. 길거리에 들이누운 비닐은 비가 와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냥 비닐이니까. 몸이 훅 무거워졌다.
“I wanted to be a big giant cloud.”
I dreamt of being a gigantic cloud. I was wrapping around the hard metal piece when I woke up. Other vinyls around me answered, ‘we’re like dayflies.’ We arrived at a place, ripped into pieces, since metal was what mattered. We’d given up, as we left the factory and were trapped in a dark warehouse. Same darkness, both eyes closed and open. Door opened once a day when a piece of metal was sold is the only moment we could see the sky. Sometimes I closed my eyes, trying to forget my dream of being a cloud. After a few days it was the vinyl’s turn. It was the metal’s escape to be precise. Vinyl rolled was trashed as the way it goes. Vinyl on the street closed its eyes on the rainy day. It’s just vinyl. The wet body got heavier.
"이게 내 일이었어서."
“This is what I do.”
종이박스였다. 바람이 한 번 더 불고 박스는 비닐을 더 감쌌다. 비닐은 눈을 떴다. 그토록 되고 싶었던 구름이 물을 쏟아내고 있다.
It was a paper box. Wind blew, and the box wrapped around the vinyl once again. Vinyl opens its eyes. Cloud, which it once dreamt of being, was raining down.
3. 츄르Ciao Churu
Dream level . 45
location : Eulji-ro 01, iron, Chungmuro 5-gil
을지로 골목길에 버려진 츄르 비닐. 밤색 눈을 가진 삼색 고양이에게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랑을 알게 되었다. 반짝이는 고양이의 눈맞춤으로 츄르는 사랑의 형태로 재탄생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다.
Churu wrap wasted on the alley of Euljiro. Calico cat with chestnut eyes saw the love that can’t get past. With an eye kiss of a cat, Churu dreams of reviving into a shape of love.
나는 서울 A대학을 다니는 B씨의 가방 한 켠에서 살았다. B는 항상 무거운 전공책, 필통도 없이 굴러다니는 펜들과 나를 같이 뒀다. 늦잠을 자주 자는 B는 오늘도 지각이다. 가방이 심하게 흔들릴 때면 우리는 서로를 꼭 붙잡고 누워있다. B가 물 웅덩이를 밟는 소리,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는 소리, 허겁지겁 뛰어간다. 이 소리에 B는 매번 지각을 피할 수 없었다.
"야옹"
I lived inside a student bag of B that went to A university in Seoul. B always placed me with heavy books and pens. B slept through the alarm as usual. As the bag shakes, we hold tight onto each other. Sound of B stepping on the puddle of water. Sound of the traffic light changing. Sound that always makes B late.
“Meow”
아마도 이번엔 내 차례일지도, 소문으로 듣기엔 삼색고양이라고 하던데. B는 시간을 한 번 보더니 가방 안으로 손을 뻗는다. 이리저리 나를 찾길래 그냥 몸을 내어주었다. 오랜만에 보는 바깥 풍경, 그리고 밤색 눈을 가진 삼색 고양이. 마지막으로 B에게 나는 이번 학기만큼은 F학점을 받지 말라고 전했다. 닿을지는 모르겠다. B도 떠나고 삼색 고양이도 떠났다. 나도 그냥 바짝 말라버린 배를 한 번 쓰다듬고 누웠다. 누군가에겐 지나칠 수 없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It might be my turn this time. I heard it is a calico cat. B checks the time, and reaches into the bag. I gave myself in. The view outside that I haven’t seen a while, and a calico cat with chestnut eyes. Lastly, I wished B to avoid failing classes this semester. Not sure he heard. B left, and the calico cat left as well. I touched my hollow belly and lied down. I learned a kind of love, a love that just could not pass by.